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제인가는 삶을 거두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자연의 섭리인 까닭에 인간은 현생을 살아가면서, 늘 死後世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모든 종교에서는 절대자를 충실히 믿고 선한 공덕을 쌓으면 갈 수 있는 죽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천상의 세계가 있음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우주 법계에 수많은 부처님이 있고, 부처님마다 고유의 국토를 소유하여 교화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극락정토는 아미타여래가 주재하는 서방극락정토를 이르는 말로 이름 그대로 극히 즐거운 곳으로 우리가 괴로움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바세계와 대조되는 곳이다.
그림 1) 아미타내영도 고려(14세기) 그림 2) 아미타 내영도, 서하(12세기) ,
110.7×51cm, 호암미술관소장 142.5×94cm, 러시아 헤르미타쥬미술관
그렇다면 보배로 장식한 瓔珞이 드리워지고 칠보조화로 이루어진 그 곳, 하루에도 여섯 번씩 만다라 꽃이 흩날리고, 천상의 음악이 연주되어 왕생을 누릴 수 있다는 꿈속에서도 그리던 파라다이스, 극락으로 죽은 자의 영혼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그 답은『觀無量壽經』이라는 경전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염불의 수행을 잘 닦은 사람이 임종에 이르면 그 영혼이 직접 극락을 찾아 홀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극락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아미타불이 직접 여러 성중을 이끌고 맞이하러 온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해석을 하자면, 수행을 통해 성불한 부처가 아닌 까닭에 우리네 衆生은 죽어서도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인솔자를 따라서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 그 발상이 재미있다.
죽은 영혼이 극락정토로 가는 과정은 아미타내영도라고 하는 불화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그려진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불이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혹은 지장보살 등과 함께 직접 往生者를 맞이하여 가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사후 無量壽佛, 無量光佛인 아미타불의 인도 하에 편안한 극락에의 왕생이 보장되어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아미타불의 미간에서 뿜어져 나온 광명은 내영자를 인도는 빛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빛에 의한 구원에 의해 내영자가 보살이 내민 연화좌에 앉으면 극락세계의 칠보연못에서 연화화생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미타불이 죽은 자의 영혼을 거두기 위하여 내영하는 모습은 唐代의 돈황 석굴에서도 그 모습이 보이고 있을 만큼 아미타신앙의 주요한 내용이었으며 아미타 삼존이 직접 내영자를 인도해 가는 아미타 내영도는 12세기 서하시대의 불화에서도 그 예가 나타나고 있고 그와 거의 유사한 도상이 14세기 고려불화에서도 보이고 있어 이러한 구도를 가진 내영도가 중국과 고려에서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 용선접인, 일본 법륜사소장 관경변상도 부분, 고려(14세기)
일본 法輪寺소장 관경변상도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아미타내영도가 그려져 있어 흥미롭다. 극락정토에서 아미타불이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의 하단에는 아미타여래와 몇몇의 왕생자를 태운 般若龍船이 극락을 향해서 항해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 넣었는데 이렇게 배를 타고 왕생자가 극락을 향해 가는 그림은 중국과 일본 불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모티프이다. 『월인석보』의 「월인천강지곡」에는 태자 안락국이 어머니인 원앙부인의 삼등분 된 시신을 잡고 울면서 왕생계를 읊자 극락세계에서 용선이 날아와 영혼을 맞이하여 간다는 내용이 있다. 정토삼부경, 즉 아미타부처와 관련된 경전에서는 그 개념이 보이지 않는 용선접인의 형태가 어떻게 불화에 그려지게 되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그림에 그려진 내용으로 보면 연화좌에 앉아서 극락에 가는 방법 이외에 극락의 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한 명의 왕생자를 위한 개인적인 연화좌에 비해 여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용선의 이용은 보다 많은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기발한 발상이다.
특정계층만이 개인전용의 金蓮花臺를 타고 럭셔리하게 아미타불에 의해 인도되어지는 것을 그려내고 있는 귀족취향의 고려불화에 비해 조선시대 불화는 보다 많은 왕생자가 보살에 이끌려 극락정토로 향하는 대중적인 龍船接引圖가 등장한다. 실은 살아서 선근을 닦은 上品과 中品에 해당하는 영혼들은 아미타불께서 직접 연화좌에 앉혀서 극락으로 인도하지만 선근이 미약한 下品의 영혼들은 화신불과 화신보살에 의해 극락으로 인도되는데, 아미타불이 사라지고 化身菩薩들에 의해 극락 가는 길을 인도받는 이 영혼들은 하품의 중생을 표현한 것이다. 극락 가는 길도 각자의 닦은 업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가 지은 공덕만큼 인과의 법에 따라 대접을 받는듯하여 공평한 처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림 4) 통도사 극락보전 외부 북측면 토벽에 그려진 용선접인도
227.5×288.5cm, 20세기 초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외벽에 그려진 용선접인도에는 船頭는 용의 머리로 船尾에는 용의 꼬리로 표현되어 있어 반야용선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용선의 양쪽에 돛을 매달고 중앙에는 선실이 있는 이배의 船首에는 합장한 채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이 서고 船尾에는 석장과 보주를 든 지장보살이 서서 배에 타고 있는 26명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있다. 머리를 쪽진 여인네에서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노인, 승복을 입은 승려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 왕생자를 빈부의 격차와 신분에 귀천 없이 단 한 번의 참회를 통해 진심으로 아미타불을 외친 모든 영혼들을 구제하고 있어 한층 포괄적이고 대중적인 모습이다. 이는 조선 후기 불교의 대중화와 함께 더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형태로 발전한 圖像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예술작품의 시대적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아미타불 내영도는 인간이 삶을 살면서 틈틈이 善根을 만들어 꾸준히 노력을 하면 친절하게도 아미타불께서 직접 오셔서 개인전용의 蓮花臺에 앉혀 극락으로 이끌어주고 비록 평생을 악업을 짓고 살더라도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 단 한 번의 참회만 있으면 대중수단인 반야용선을 타고 화신보살의 인도 하에 극락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惡業을 지을 수밖에 없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들에게 특히 죽음이라고 하는 필연적인 삶의 마무리 단계을 거쳐야 하는 인간에게 구천을 떠돌지 않고 극락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일러준다는 것은 이 얼마나 매력적인 유혹인가... 그래서 아미타신앙은 종파와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 문화재청 김포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정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