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저자: 박영규
출판사: 들녘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그 양이 실로 방대하다. 그리고 엄청나다. 그러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게 아닌가. 그러나 그 많은 양에서 우리가 다가가기엔 벅차다. 학계에서나 다루는 것으로 치부된 게 오래 되었다. 사실 한국인들 대다수가 한국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고 할 정도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데, 바로 이 들녘에서 나온 '한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로 인해 우리는 그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각 왕들의 연대기적 서술을 분류별로 나누어 요약 설명을 잘해 놓았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기에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교양서에 속할 것이다. 그래도 명색히 자기 나라 역사 정도는 얼개로라도 알고 있어야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자신과 역사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 인터넷을 할 필요가 없다. 한반도뿐이 아닌 세계와의 교류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는 그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참고로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면 태조에서 철종실록까지를 말한다. 후에 편찬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본이 이왕직을 설치해 작성한 것이기에 정통 조선 정부가 기록한 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에 지정, 등록된 것도 이 태조실록에서 철종실록까지이다.
1. 태조실록 : 이름은 이성계. 조선의 개국. 주요 보좌인물은 무학대사와 정도전. 주요 가족은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 신덕왕후 강씨는 방원과의 마찰, 대립으로 유명하다. 주요 사건으로는 제1차 왕자의 난이 있다. 앞에서 보았던 신덕왕후 강씨가 자신의 소생으로 세자를 삼으려 하고 태조도 거기에 마음을 움직이자 한씨 소생 아들들은 (특히, 방원) 결국 칼을 들이댄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태조는 궁을 떠나 함흥에 머물게 된 것이고 태종 방원은 아버지에게 차사를 보내지만, 보내는 족족 죽이기에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말년에 가서는 한양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조선 왕조에 있어 태상왕을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2. 정종실록: 이름은 이방과(영안군). 태조의 둘째아들이다. 1차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이자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방석,방번 두 형제가 살해되자 방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첫째형은 일찍 죽고 없다) 제일 위의 형인 방과에게 왕위를 받게 했다. 방과는 다른 동생들과 달리 왕위에 뜻도 없고 야심도 별로 없었다. 방원에게 세자의 자리를 받게 하려 사양했지만 결국 방원의 권고로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그로부터 가시방석생활이 시작되었다. 주요사건은 제2차 왕자의 난이 있다. 이번에는 같은 동복 형제들끼리의 권력투쟁이었는데 방원 외에 야심 많은 이가 방원의 바로 윗형인 넷째 방간이었다. 그는 박포의 충동질로 인해 반기를 들었는데 다른 형제들은 방원을 지지했고, 결국 방간은 체포되어 유배를 당했다. 그러자 방원의 심복들과 정종은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방원에게 세제를 책봉하고, 곧이어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났다. 또 다른 사건은 한양의 지형을 문제삼아 개경으로 다시 천도했다는 것이다. 정종은 사후에도 공정왕실록이라 기로되어 있어 묘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숙종대에 가서야 정종이란 묘호를 얻으니 그만큼 정종은 왕으로서 대접을 못받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3. 태종실록: 이름은 이방원(정안군). 태조의 다섯째 아들이다. 1,2차 왕자의 난으로 경쟁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주요 사건으로는 사병 혁파, 육조직계제 단행, 한양 천도, 민무구 형제의 옥사 등이 있다. 위의 사건들은 모두 한가지 목적인데 오로지 왕권 강화였다. 자신의 왕위에 오른 과정을 봐서 그런지 후대 왕들에게만큼은 불안정한 왕권을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왕의 권위를 확립한 것이다. 아마 그로인해 세종이 편안히 빛나는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주요 가족은 원경왕후 민씨가 있다. 민씨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태종을 철저히 보좌했던 여장부였다. 그러나 태종이 왕위에 오르고부터는 태종과 민씨 사이에 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는데, 투기가 심해 후궁을 들이는 것에 강한 반발과 자신의 형제들인 민무구 형제의 옥사로 파경은 더욱 깊어갔다. 그래서 한때 폐비에 거론되기도 했지만 폐비는 면했다.
4. 세종실록: 충녕대군.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양녕대군의 폐세자 사건으로 세자에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다. 주요 인물로는 황희, 맹사성, 장영실, 박연, 김종서 등이 있다. 주요 사건으로는 의정부 서사제로 바꿈. 집현전 설치. 훈민정음 외 여러 분야의 서적 발간. 4군6진 개척으로 압록강-두만강 국경 확정. 아악 정리 등이 있다. 조선 시대 중에 이러한 급격한 발전을 이룬 때는 보기 힘들다. 세종은 조선 역대 왕들 중 아들이 가장 많은 왕이다. 물론 그로인해 그의 자식들은 훗날 서로 권력 투쟁을 벌이는 비극을 낳지만 말이다.
5. 문종실록: 이름은 이향. 주요가족으로는 현덕왕후 권씨가 있다. 또한 세자 시절 세자빈으로 순빈 봉씨가 있었으나 잘 알듯이 동성연애의 행각이 발각되어 폐출되고 권씨가 들어왔다. 권씨는 단종을 낳고 3일만에 죽었는데, 훗날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자 권씨의 원혼이 나타나 수양대군의 첫째 아들인 덕종이 죽었으며, 수양대군 꿈에 나타나 침을 뱉어 피부병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세조는 분노로 현덕왕후 권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도 벌였다고 한다. 문종대에 별 다른 사건은 없다. 거의가 아버지 세종의 정책을 이어받고 세자 시절에 정치도 해봤기에 어려울 건 없었다. 단지 몸이 약해 일찍 죽어서 아들 단종의 지위가 약하게 되는 흠을 남겼다. 문종은 죽어가면서 동생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 단종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6. 단종실록: 이름은 이홍위(노산군). 문종의 아들이다.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주요사건으로는 계유정난이 있다. 계유정난을 통해 수양대군은 영의정에 오르고 경쟁관계였던 안평대군을 유배보내 사사시킨다. 또한 금성대군 이하 종친들을 유배보내자 위협을 느껴 스스로 왕위를 내놓고 상왕의 자리에 앉았지만, 집현전 학자들이 복위 운동을 벌여 결국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그 유명한 영월 청룡포에 유배된다. 그의 실록도 따라서 노산군일기로 전해져 왔으나 숙종때에 단종으로 복위되어 단종실록이라 불리게 되었다.
7. 세조실록: 이름은 이유(수양대군). 세종의 아들로 문종의 둘째 동생이다. 야심이 강한 인물로 계유정난을 통해 결국은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앉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육신과 생육신이 나오는데, 사육신은 단종을 위해 죽은 '성삼문, 하위지, 이개, 박팽년, 유성원, 유응부' 를 중종대 사림파들에 의해 추앙되었으며, 생육신은 세조에게 벼슬하지 않고 단종의 절의를 지킨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을 대칭에 높여 불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주요 인물로는 권람, 한명회, 신숙주가 있으며, 의정부의 힘을 줄이고 비서실인 승정원에 비중을 두어 집행 방식의 왕권강화로 이행했다. 죄책감과 형수인 현덕왕후 권씨에게 시달려 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8. 예종실록: 이름은 이황(해양대군). 세조의 둘째아들로, 형인 의경세자(덕종)가 세자 책봉 후 2년만에 죽어 19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 정희왕후 윤씨의 수렴청정을 받게 된다. 세조대에 이룩한 강력한 왕권에 큰 변화는 없지만 예종도 병약해서 전과 같은 왕권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원로 대신들이 섭정을 맡는 원상제도도 생겨났다. 주요 사건으로는 남이의 역모 사건이 있으며, 주요 가족은 아들 제안대군이 있다. 사실 예종 사후 왕위 계승으로 따지면 제안대군이 먼저였지만, 덕종의 후손인 자을산군에 밀려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위협을 잘 알고는 스스로 어리석은 행동으로 경계를 풀었다고 한다.
9. 성종실록: 이름은 이혈(자을산군). 세조의 장자 덕종(의경세자)의 둘째아들로, 형인 월산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할머니 정희왕후와 성종의 장인인 한명회의 결탁으로 자을산군을 올려 자신들의 영향력을 미치려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의 강한 주장도 한몫 했을 것이다. 13세의 나이로 올랐기에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치세에 능했기에 친정 이후 조선 사회는 융성을 맞게 된다. 주요 인물로는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이 있다. 성종대에는 사림의 진출과 경국대전의 완성. 동문선, 악학궤범 등의 편찬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요 가족으로는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와 폐비 윤씨가 있다. 소혜왕후 한씨는 인수대비로 잘 알려져 있는데, 학식이 깊어 세조의 거사에 있어서도 한 몫 거들었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부녀자의 도리에 대해 적은 '내훈'을 직접 간행했는데, 그만큼 엄격한 유교 사상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며느리인 폐비 윤씨가 투기하고 손톱자국을 낸 것에 큰 화를 내며 폐비를 시킨 것이다. 이는 훗날 손자인 연산군의 머리로 들이박혀 죽는 결과를 낳게 했다. 폐비윤씨는 성종의 후궁이었다가 공혜왕후 한씨가 죽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녀는 투기가 심해 후궁들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빈으로 강등될 뻔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투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냄으로 인수대비와 성종의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성종 자신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머니 인수대비의 완강한 뜻에 폐비와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일체 간여할 수 없었다. 이것은 훗날 연산군의 활동을 통해 비참한 왕실의 가족사가 이어지게 된다.
10. 연산군일기: 이름은 이융. 성종이 차후 100년간 폐비 사건을 거론하지 말라는 유명으로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생모가 폐비되어 죽은 줄 모르고 계모인 정현왕후 윤씨가 친모인 줄 알고 자랐다. 그러나 바로 이 어린시절을 통해 연산군이 빗나가게 되었다. 정현왕후의 아들인 진성대군을 대하는 것과 자신이 대하는 태도, 할머니 인수대비가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 등을 보면서 연산군 스스로는 비뚤어진 애정으로 심한 마음의 상처와 분노를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그를 포악하고 거칠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있다. 주요 인물로는 임사흥이 있는데, 그는 연산군에게 폐비 윤씨 사건의 진상을 말해주면서 갑자사화를 일으킨 주범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계산에 따른 행동인데 이로 인해 자신을 쫓아냈던 사림세력과 훈구세력 모두를 없앨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결국 몰살에 가까운 갑자사화를 통해 권신들을 자극하면서 연산군은 중종반정을 통해 강화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31세의 생으로 마감한다.
11. 중종실록: 이름은 이역(진성대군). 성종의 아들이자, 연산군의 배다른 동생이다. 중종반정은 중종의 뜻보다는 권신들의 뜻에 의해 중종이 지로 내몰린 결과였다. 중종반정의 주도세력은 성희안과 박원종이었는데, 박원종은 특히 그의 누이인 월산대군 부인 박씨가 연산군에 의해 겁탈당하고 이로 인해 박씨가 자결한 것에 대해 큰 원한을 품고 있었다. 중종은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의 세력을 견제하기 그는 조광조를 끌어들여 다시 사림들을 등용한다. 그러나 오히려 조광조의 급진, 과격에 싫증을 내고는 기묘사화로 그를 내칠 수밖에 없었다. 주요사건으로는 기묘사화가 있으며, 주요 인물로는 조광조, 서경덕, 황진이 등이 있다. 주요 가족으로는 단경왕후 신씨와 문정왕후 윤씨가 있다. 반정공신들의 기세는 드높아서 중종의 첫 비인 단경왕후 신씨를 폐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신씨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다른 한편으로는 연산군의 비인 폐비 신씨의 오빠이기 때문이다. 이미 신수근을 제거했기에 단경왕후 신씨가 왕비에 책봉된다면 자신들에게 화가 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신씨는 사가에 머물면서 중종을 위해 인왕산 바위에 자신이 입던 치마를 걸어놓아 중종이 볼 수 있도록 했다.(치마바위 전설) 이후 장경왕후 신씨 사후 다시 한번 그녀의 복위가 거론되었지만 결국 실패되고 사가에서 생을 마쳤다. 문정왕후 윤씨는 잘 알려진 대로 조선시대의 여왕이라 불린 인물이었다. 그녀의 독점성, 야심은 그 어느 남자보다 강해서 인종을 죽게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아들 명종에게도 매질과 욕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그녀는 죽을 때까지 왕보다 더 강한 존재로 살았다. 아들 명종과 대신들은 그녀가 죽길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12. 인종실록: 이름은 이호. 중종의 아들. 조선의 역대 왕들 중 가장 짧은 치세를 지낸 인물로 윤월을 포함해 9개월간이라고 한다. 그는 역대 왕들 중 성군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고 유학에서 말하는 군자의 상을 가지고 있었다. 계모인 문정왕후에게 효심을 다해 정성껏 대접했다고 한다. 세자 시절, 동궁에 불이 났을 때도 불을 지른 장본인이 누군지 알기에 그대로 타 죽을 작정이었지만 아버지 중종의 목소리에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계모인 문정왕후의 욕설과 학대를 자신의 효심 부족 탓이라며 죄책감을 느껴 이복 동생 경원대군을 위해 후사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문안을 갈때마다 툭하면 우리 모자를 언제 죽일거냐면서 막말을 하던 문정왕후가 어느날은 웃음을 띠며 떡을 권했다고 한다. 인종은 너무 기뻐 아무 사심 없이 떡을 먹었는데 그 떡을 먹고 얼마 안가 시름시름 앓더니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독이 든 떡을 내놓았고 하는데 그만큼 문정왕후의 극악함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13. 명종실록: 이름은 이환(경원대군). 중종의 아들이자, 인종의 이복동생. 어머니 문정왕후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재위는 평생 어머니의 그늘 밑이었다. 12세의 나이로 올랐기에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게 되는데 이때부터 윤씨일가 소위 소윤이라 칭하는 숙부 윤원형 일파의 전횡이 시작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을사사화, 삼포왜란, 임꺽정의 난이 있다. 을사사화를 통해 인종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장경왕후 윤씨의 오라비 윤임 일파, 소위 대윤파와 사림들은 제거가 되고 소윤파의 독주를 막을 이는 없었다. 명종을 이를 견제하기 위해 처가쪽 인물인 인순왕후 심씨의 외숙 이량을 불렀으나 그 역시 만만찮은 난봉꾼으로 당대인들은 이량, 윤원형, 심통원을 묶어 조선3흉이라 불렀다. 거기에다가 심상치 않은 왜구의 출현, 임꺽정의 난은 사회를 거의 엉망으로 만들었고 문정왕후가 죽기 전까지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었다. 문정왕후 사후 그나마 조선 사회는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다. 윤원형 일파와 승려 보우는 유배되고, 여러 인재를 등용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망가져서 인지 명종 자신도 어머니가 죽은 지 2년 후에 34세의 나이에 죽는다. 홧병이 너무 커서일 수도 있겠다. 더욱이 그는 하나뿐인 세자도 어려서 죽었기에 뒤를 이을 후사가 없게 되었다는 큰 문제를 남기고 말았다. 주요 인물로는 퇴계 이황이 있다.
14. 신조실록: 이름은 이공(하성군). 중종과 창빈 안씨 소생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 명종과는 촌수상으로 삼촌과 조카에 해당된다. 하성군은 셋째임에도 불구하고 명종이 그를 신임하여 자주 대궐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이것을 계기로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와 종실은 그를 양자로 받아 왕위에 올리게 된다. 그는 16세 나이에 수렴청정을 받아 17세에 친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운이 좋지 않다고 해야 할지, 그의 시대는 그 유명한 전란의 시대가 되고 만다. 또한 이때 사림들의 정계 정착으로 붕당이 본격화 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임진왜란이 있다. 주요 인물로는 이순신, 곽재우, 율곡 이이, 송강 정철 등이 있다. 주요 가족으로는 인목왕후 김씨와 영창대군이 있다.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로 이미 광해군이 세자에 책봉된 상태에서 세자인 영창대군을 낳았다. 선조의 기쁨은 꽤나 컸다. 자신이 방계 혈통이라는 컴플렉스가 있기에 또다시 서자 출신인 광해군으로 왕통을 잇는다는 게 매우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창대군이 세자로 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선조는 급사하고 말았다. 이로인해 인목왕후와 영창대군의 생은 결정되어졌다. 광해군과 대북파는 자신들의 불안정한 왕권의 정통성을 보장받기 위해 동복형 임해군을 사사하고, 영창대군을 폐서인 시킨 뒤 사사시켰으며,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도 사사, 인목왕후도 폐비시켜 서궁에 유폐시켰다. 인목왕후도 사사하자는 소리가 높았으나 오히려 광해군이 이를 막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비극 속에서 인목왕후의 증오심은 인조반정으로 활짝 폈을 것이다. 그녀는 인조반정 이후 왕실의 최고 어른의 위치 속에서 지내다가 4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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