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22대 왕 정조(1752~1800)는 늘 정보에 목말라 했고, 시사(時事)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면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군주였다. 정조는 또 정무(政務)를 처리하느라 밤샘도 마다 않는 워커홀릭이었고, 바쁜 와중에도 독서에 열중했다. 정파 구분 없이 인재를 등용해 탕평(蕩平)에 힘썼고, 백성들의 농사를 염려해 가뭄에 애를 태우는 왕이었다.
이처럼 정조의 군주로서의 면모와 인간적 면모를 두루 확인할 수 있는 '정조어찰첩'이 18일 발간됐다. 정조가 신하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어찰을 발굴해 2월 일부를 소개했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편지 297통을 모두 번역하고 해제를 붙여 두 권짜리 '정조어찰첩'(성균관대 출판부)을 내놓았다.
2월 어찰 공개 이후 논란이 일었던 정조 독살설의 진위 여부에 대해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는 "전체 편지를 모두 살펴본 결과 정조의 건강은 지속적으로 나빠졌고 사망할 무렵에는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당시 어찰 공개로 독살설 외에 △다혈질적인 성격 △막후정치 활동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반하는 비속어 사용 등 정조의 다양한 면모가 드러났다.
297통 전체를 분석한 이번 책에선 또 다른 정조의 면모가 엿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보에 목말라했던 모습이다.
"요사이는 들려줄 만한 것이 있는가"를 비롯해 "시일이 지연되어 답답하니 내일 안으로 발송하도록 하여라" "근래 오랫동안 인편 왕래가 없어 몹시 답답하였다" "요새는 내가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애당초 경이 먼저 인편을 보내는 경우가 없으니…" "요사이 시사에 대해선 귀머거리나 장님과 다름 없으니, 귀에 들어온 것이 있으면 대략 알려주기 바란다" 등의 말을 자주 썼다.
"소식이 갑자기 끊겼는데 경은 그동안 자고 있었는가, 술에 취해 있었는가. 아니면 어디로 갔기에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는가. 혹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아 그러하였던 것인가"라며 소식이 없어 아쉬웠던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정조는 여론의 동향에도 민감했다. "선공감의 빈자리에 한(韓)을 임명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데, 여론이 어떠한지 모르겠다. 널리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것이 어떠한가"는 대목이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어찰첩에서 그려지는 정조는 워커홀릭이었다. "나는 너무 바빠서 눈코 뜰 새 없으니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사흘 동안 눈을 붙이지 못했는데, 지금까지도 그대로 일하느라 피곤하지만 몸져눕는 것만은 면했다" "나는 일이 바빠 잠깐의 틈도 내기 어렵다.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가 오시(午時)가 지나서야 비로소 밥을 먹으니, 피로하고 노둔해진 정력이 날이 갈수록 소모될 뿐이다."
진 교수는 "이런 정조의 일상과 정무에 임하는 모습은 다른 역사기록에선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조는 이런 격무 속에서도 틈만 나면 독서를 했고, 책 읽을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나는 삼여(三餘)의 일과인 독서에 골몰하느라 창밖의 일은 전혀 모른다." "대개 주서(朱書)는 100권에 가까운데 밤낮으로 비점(批點)과 권점(圈點)을 찍는 데다 가뭄 걱정까지 겹치고, 또 재계하는 중에 온갖 문서를 보느라 심혈이 모두 메마른 소치이니, 답답한 일이다."
정조는 소론과 남인을 인사에서 배제하는 것은 탕평 인사의 원칙에 배치된다고 판단했으며 모든 정파를 아우르고, 각 정파의 의견을 조정하는 인사를 염두에 뒀다.
"이번 정사는 오직 두루 인재를 등용하고 탕평(蕩平)을 하여 내 뜻을 널리 알리는 단서로 삼는 것이 좋겠다" "작은 고을에 숨어있는 충성스럽고 성실한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단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널리 인재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문벌의 높고 낮음과 색목(色目)의 동서를 따지지 말고 오직 인망으로 뽑아…"
정조를 가리켜 '뜻에 맞지 않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고 조급하게 처분을 내린다'고 비판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 이명연에 대해선 "젊은 사람이 숨기지 않고 소회를 말하였으니 칭찬할 만한 일이다"라며 아량을 보였다.
정조는 편지 곳곳에서 날씨 얘기를 한다. 백성들의 농사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날씨가 계속 쨍쨍하여 비가 내리기를 아침저녁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 내리는 비는 감로(甘露)와 같다. 이를 보자 너무나도 기뻐 나도 모르게 손과 발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단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마치 꿀이나 기름, 엿과도 같다" 등의 내용이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백성을 병들게 하는 못난 수령들은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어떤 놈의 관리가 공적인 일을 빙자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는 짓을 하는가" 등에 잘 드러난다.
이밖에 정조는 "안화(眼花·눈병)가 나을 기미가 없어 너무나도 답답하다" "피로가 쌓인 나머지 재계하며 소식(素食)하는 동안 간간이 생강과 계피를 먹기는 하였으나 기력이 버티기가 힘들어 자리에 앉기만 하면 정신을 잃고 잠이 드니, 너무나도 답답하다" "팔뚝의 통증 때문에 매우 괴롭다" "곽란(¤亂·위장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며칠째 고통스럽다" 등 건강에 대한 얘기를 자주 편지에 썼다.
진 교수는 유형별로 편지를 구분하면 '민감한 정치 현안의 처리와 자문'에 대한 내용이 67건으로 가장 많고 △인사 문제(54건) △상소, 장계의 처리와 지시(41건) △중앙 정계와 산림의 여론과 동향 탐색(31건) 등 정무(政務)에 관한 편지가 가장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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