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기록문화유산의 의궤
'의궤(儀軌)'란 조선시대에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의궤는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을 합한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이다.
전통시대에 주요한 국가적 행사가 있으면 전왕 때의 사례를 참고하여 거행하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주요한 국가 행사의 관련 기록을
의궤로 정리해 둠으로써 후대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의 혼인을 비롯하여 세자의 책봉, 왕실의 잔치, 왕실의 장례, 궁궐의 건축 등과 같이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하는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관련 기록을 모아두었다가 행사가 끝난 뒤에 의궤 편찬을 담당할 임시 기구를 만들어
의궤를 편찬했다. 의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철저한 기록정신이다.
조선시대의 국왕은 오늘날 대통령보다 더욱 막강한 권한을 가졌고, 그 재임 기간도 국왕이 사망하거나 본인의 희망에 의하여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까지 계속하는 일종의 종신직이었다.
조선 시대인들은 국왕의 막강한 권한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했다. 그 중의 하나가 철저한 기록이었다.
의궤는 이러한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이다. 의궤는 국왕이 수행하는 국정 가운데 경비가 많이 소요되는 국가 행사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이에 관한 일체의 내역을 기록하여 정치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꾀하였다.
조선전기부터 의궤 제작
의궤에는 행사 기간 중에 국왕이 내린 명령서, 업무를 분장한 관청 간에 오간 공문서, 업무의 분장 상황, 업무 담당자의 명단,
행사 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 소요 물품, 경비의 지출 내역 상황이 모두 기록되어 국가 재정이 낭비되거나 다른 곳으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의궤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림이다. 의궤는 행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반차도(班次圖)나 각종 건물 또는 물품의 모습을 그린 도설(圖說)를 수록한 그림책이기도 하다. 통상 천연색으로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서 우리는 행사가 진행되던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문자기록만으로는 미처 파악할 수 없었던 물품의 세부 사항까지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의궤는 기록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적인 행사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의궤는 조선 초부터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태종 11년(1411)에 '종묘제례에 앵두를 올리는 시기가 의궤에는 5월 초하루와 보름이라고 규정되어 있다'는 구절이 있고, 세종 4년(1422)에 태종의 국장 제도를 의논하면서 태조와 정종의 '상장의궤(喪葬儀軌)',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국상의궤(國喪儀軌)'를 거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궤는 조선이 건국된 직후부터 국가의 주요 행사를 거행할 때마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의궤는 모두 1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며, 그 이전의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사이에 왜란과 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조선 정부의 공식 기록들이 대부분 불타버렸는데,
의궤 역시 전란의 와중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이후 의궤는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18세기에 들어와 그 종류와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18세기가 국가의 각종 문물과 제도를 전체적으로 재정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국가적 행사의 보고서인 의궤 역시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종래의 의궤는 손으로 직접 쓰고 그림을 그린 필사본으로만 만들어졌는데, 정조대의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필두로 하여 활자본이 만들어졌다. 이 의궤들은 정조의 화성 행차와 화성 성곽의 건설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오늘날 많이 알려진 정조의 화성 행차도는 활자본 의궤 속에 포함된 목판본 그림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한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궁중잔치의 모습을 담은 '진찬의궤'나 '진연의궤'도 활자본으로 제작되어, 행사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에게 고르게 나누어 주었다. 이 시기에 활자본 의궤가 만들어진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보급하여 국왕의 국정 운영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의궤는 19세기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특히 정조의 정책을 계승하여 부강한 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고종대에는 많은 의궤들이 제작됐는데, 그 체제나 내용에서도 정조대의 의궤와 비슷한 방식을 채택했다.
'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조 어찰첩 (0) | 2009.05.18 |
---|---|
정조 '막후정치' 입증 비밀편지 (0) | 2009.02.09 |
아 ! 숭례문... (0) | 2009.02.08 |
조선통신사... (0) | 2009.02.02 |
소치탄생 200주년... (0) | 2008.12.28 |